한 수녀의 죽음, 28년만에 밝혀진 그 진상은?

한 수녀의 죽음, 28년만에 밝혀진 그 진상은?

조광태 / 전임기자

 


 

한 수녀의 죽음, 28년만에 밝혀진 그 진상은?

 


 

1992327일 인도 케랄라(Kerala)주 코타얌(Kottayam)의 성 피오 수녀원 기숙사(St. Pius Convent Hostel)에 범죄현장이 발견된다.

 

슬리퍼 한 짝이 입구쪽 부엌 마루 바닥에, 다른 한 짝은 냉장고 쪽에 각각 널부러져 있고, 수녀의 미사보가 문간에 걸려 찢겨 있었다. 현장은 누가 보더라도 어떤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음을 직감케 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그날 오후 경찰은 수녀원 우물에서 한 구의 시신을 건져낸다. 놀랍게도 그 시신은 수녀의 시신이었다. 수녀의 이름은 아바야(Abhaya). 그녀는 수녀이자 크나나야(Knanaya) 카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한 지방대학의 학생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맡은 코타얌 서부 경찰서 범죄수사국(Kottayam West Police Crime Branch)은 이 사건을 아바야 수녀의 자살로 결론 지었다.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싶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검시결과

 

검시결과 목 양쪽에 손톱자국이 발견됐다. 머리에는 두 개의 칼자국이 있었고, 여기 저기에 찰과상이 있었다. 파괴된 두개골이 있었다. 자살이라는 범죄수사국의 결론에도 불구, 몇가지 의문점들이 발견됐다.

 

인도의 사회활동가인 조몬 푸텐프락칼(Jomon Puthenpurackal)씨는 단박에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또한 사건 며칠 후 수녀의 시신을 확인한 오빠 비주 토마스(Biju Thomas)씨도 이것이 단순한 자살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수녀의 아버지 메튜 토마스(Matthew Thomas)씨는 즉각 이 사건을 중앙수사국(Central Bureau of Investigation, CBI)에서 인수해줄 것을 요구한다.

 

수사를 맡은 뉴델리 CBI12년 동안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모두 네차례에 걸친 수사결과를 내 놓았는데 그 중 셋은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CBI는 주심 판사에게 소송을 각하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건 다음해인 19931차 수사결과는 초동수사의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자살로 인한 익사였다는 것. 하지만 주심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수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3년 후인 1996년의 수사결과는 아예 자살인지 타살인지의 결론 자체를 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주심판사에게 소송 각하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주심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 3년 후인 1999년의 수사결과는 이 사건이 살인사건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살인범을 특정하지 않았다. 주심판사는 수사결과의 불완전함을 지적하고 이를 다시 보완하도록 지시했다.

 

2005년의 수사결과 역시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또 다시 주심판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1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은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있던 날 새벽 아바야 수녀는 시험공부를 위해 일찍 기상했다. 물을 가져가기 위해 부엌에 들렀던 수녀는 현장에서 심리학 교수인 토마스 코투르(Thomas Kottoor) 신부와 수녀원 기숙사 관리책임자인 세피(Sephy) 수녀를 보게 된다. 그 둘은 섹스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나중에 재판과정에 밝혀진 바로는 현장이 발견되자 이들 둘은 부엌에 있던 도끼로 목격자를 가격했다. 그리고 그 시신을 우물에 내다 버렸다.

 

16년만에 이루어진 기소

 

뉴델리 CBI에서 네차례에 걸쳐 수사를 매듭지지 못하자, 사건은 다시 케랄라주 코친(Cochin) 남부지역의 CBI로 이송됐다. 그 결과 2009년에는 코투르 신부와 세피 수녀, 그리고 또 다른 신부인 푸트리카일(Poothrikkayil) 세 명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졌다. 이 중 푸트리카일 신부는 이 사건에 같이 연루된 것으로 기소되었으나 나중에 증거부족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코트루 신부와 세피 수녀는 부적절한 관계와 범행 일체를 모두 부인했다.

 

살해된 아바야 수녀, 28년만에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피해자임이 입증됐다.

 

이들 세 명은 재판을 각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는 동안 또 다시 9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985, 마침내 법원의 명령으로 재판이 재개됐다.

 

재판과정에서 검사측은 이들 피고들이 상당기간에 걸쳐 사건은폐를 시도해왔음을 지적했다. 특히 세피 수녀의 경우 2008년 체포되기 전날 처녀막 재생수술을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코투르 신부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금전, 물질, 권력등을 동원한 것으로 검사측이 주장했다. 다른 신부와 수녀, 평신도들에 대해 자기에게 복종을 강요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검찰측은 경찰에 의한 증거조작 및 문서파기가 있었음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 단 한 명의 수사관에 대한 기소와 다른 한 명에 대한 고발만이 있었을 뿐이다. 다른 경찰인력에 대해서는 향후 재발을 방지하라는 판사의 경고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기소된 수사관은 2008년 사망으로 재판이 중단됐고, 고발된 다른 수사관 역시 사망함으로써 경찰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사실 수사과정에서 경찰의 일탈은 심각했다. 사건에는 목격자가 있었다. 아닥카 라주(Adacka Raju)라는 한 젊은이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날 밤 수녀원 기숙사에 침입했다. 테라스에 있던 동으로 만들어진 접시를 훔쳐팔기 위해서였다. 이미 전에도 두 차례 접시를 훔쳐판 전력이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두 명이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중 한명이 코투르 신부였다. 이를 목격한 것의 댓가는 범죄수사국에 끌려가서 58일간 구금된 것이었다. 그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비 인간적인 고문이 있었다. 검찰측은 고문으로 그가 서서 걷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폭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라주씨의 지인을 체포해서 이틀씩 고문을 하기도 했다. 라주씨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증언토록 압박했던 것.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그 지인의 형제를 체포해 6일간 고문을 하기도 했다.

 

28년만의 유죄판결

 

사건이 불거지자 그에게 제안이 들어왔다실질적인 금전적 보상아내의 일자리아이의 학비주택제공 등 달콤한 제안이었지만아닥카 라주씨는 이를 거절했다결국 라주씨의 증인은 법정에서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그리고 마침내 지난 해 12월 22일 코투르 신부와 세피 수녀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다음 날인 23일 법정은 이들에게 종신형의 형기를 판결했다사건이 발생한지 2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긴긴 싸움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재판과정에서 피해자 가족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가해자측은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피해자의 상태를 조작했다심리적 우울증이 있었다는 얘기들과 가난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는 얘기들이 자살의 동기인 것처럼 떠돌았다몇몇 수녀들은 가해자인 신부의 편을 들었다가난한 농부였던 피해자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재판과정이던 2015년 피해자의 아버지는 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재판결과를 다 보지 못한 해 세상을 떠났다.

 

인도판 도가니 같은 이 사건은 인도사회의 한 단면이다하지만 여기에는 종교의 권위가 한 몫을 하기도 한다. 2019년 기소된 푸랑코 물라칼(Franco Mulakkal) 주교의 경우 이를 고발하거나 사건을 증언했던 수녀들이 대거 다른 곳으로 이전되기도 했다로비오 바다쿰체리(Rabio Vadakkumcherry)라는 한 전직 신부는 16세 소녀를 강간했다가 아이가 출생함으로써 사건이 밝혀져 2019년 20년 형을 선고받았는데심지어 피해자의 아버지가 자신이 강간범이라고 법정에 증언하기도 했다이 또한 교회의 권위와 무관하지 않았다.


30년을 떠돌아다니던 사건, 이 사건은 권력과 공권력, 종교, 권위,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얽혀 명백한 진실을 외면했던 인도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인도 뿐 아니라, 어느 사회이든 힘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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