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운동의 성인, 세자르 차베스의 몰락과 침묵의 이면(2)
V. 수십 년 동안 알고 있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 피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 내부에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한 친척이 차베스에게 직접 피해를 제기했다. 차베스의 아들 폴 차베스는 2000년대 초에 이미 측근들로부터 관련 의혹을 전달받았다. 10여 년 전, UFW 노조원들의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에 로하스가 분노에 가득 찬 글을 올렸다가 며칠 후 삭제했다. 그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눈을 떠요. 여러분이 매년 행진하며 기리는 그 남자가 나를 성적으로 학대했습니다.'
조직은 알고 있었다. 운동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침묵은 60년 동안 지켜졌다. 대의의 이름으로.
뉴욕타임스는 피해자가 이 세 사람만이 아님을 보고했다. 적어도 12명의 여성이 차베스로부터 쫓김을 당하거나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DNA 검사 결과, 차베스는 아내 헬렌과의 사이에서 낳은 8명의 자녀 외에 적어도 세 명의 다른 여성과 4명의 자녀를 더 두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VI. 미국이 뒤흔들리다 — 광장에서, 학교에서, 정계에서
기사가 공개된 그 날, 반응은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UFW 자체였다. 조합은 차베스의 생일인 3월 31일에 예정된 모든 연례 기념행사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 의혹들은 우리에게 충격이며, 피해를 입은 분들을 위한 트라우마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베스의 가족은 '우리는 성적 비위를 보고한 이들의 목소리를 존중한다'며 '이 의혹들은 우리 가족에게 깊은 고통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새크라멘토, 샌디에이고, 오클랜드, 덴버, 텍사스 전역에서 지자체들이 즉각 반응했다.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팔로마 아기레 감독관은 '돌로레스 우에르타와 앞으로 나선 용감한 여성들과 함께한다. 진실을 말하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밝혔다. 덴버 시는 올해부터 '세자르 차베스 데이' 대신 우에르타의 구호에서 딴 '시 세 푸에데 데이'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텍사스의 공화당 주지사 그렉 애벗은 주 차원의 차베스 기념일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연방 의회에서는 한 공화당 의원이 해군 보급함 USNS 세자르 차베스의 함명 변경을 국방부에 공식 요청했다.
오클랜드 시장 바바라 리는 '우에르타와 다른 고발자들의 편에 무조건 선다. 그들의 용기는 말이 아닌 행동, 책임, 그리고 정의와 존엄에 대한 헌신으로 응답받아야 한다. 그 누구도 책임 위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샌디에이고 치카노 파크에는 차베스가 중앙에, 우에르타가 그 옆에 함께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있다. 치카노 파크 박물관과 문화 센터는 성명에서 밝혔다. '이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농장 노동자들, 치카노 운동, 우리 지역 사회의 투쟁과 성취 그리고 집단적 유산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우리의 운동과 역사는 우리의 집단적 힘과 공동체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프레즈노 주립대에서는 차베스 동상이 검은 천으로 덮였다. 각 도시의 차베스 거리, 차베스 학교, 차베스 공원의 이름 변경 여부를 두고 공청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VII. 두 영웅 이야기 — 차베스와 우에르타
이 사건의 가장 역설적인 측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무대에서 같은 대의를 위해 싸웠다는 점이다.
돌로레스 우에르타는 1930년생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불의에 맞서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가 사업가이자 활동가였다. 1955년, 그녀는 지역사회 조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62년, 차베스와 함께 UFW의 전신을 공동 창립했다. 여성이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서는 것이 이례적이었던 시대에, 그녀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포도 재배업자들과 싸웠다.
공식적인 역사에서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놀랍도록 평등한 관계'로 묘사됐다. 하지만 우에르타 재단의 공식 전기조차 '그녀는 세자르의 오른팔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가장 큰 가시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폭발적인 언쟁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에르타는 2012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는 시상식에서 농담처럼 말했다. '돌로레스가 자신의 구호인 시 세 푸에데를 내가 빌려썼을 때 매우 너그럽게 봐줬습니다.' 두 사람 — 차베스와 우에르타 — 모두 미국이 자랑하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이제 95세의 우에르타는 증언했다. 그 영웅에게 당한 일을. 60년을 침묵 속에 살아온 이유를. 그녀는 말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생존자임을 압니다. 폭력의, 성적 학대의, 나와 다른 여성들을 재산이나 통제의 대상으로 본 지배적인 남성들의.'
그러면서 그녀는 운동의 가치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강조했다. '세자르가 델라노에서 새크라멘토까지 혼자 행진한 것이 아닙니다. 1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행진했습니다. 그 운동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VIII. 영웅은 죽어야 하는가 — '시 세 푸에데'의 미래
미국의 라틴계 커뮤니티는 지금 깊은 혼란 속에 있다. 차베스는 단순한 노동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그의 이름을 배웠고, 거리에서 그의 이름을 걸었고, 3월 31일이면 그의 이름으로 행진했다.
오클랜드의 한 지역 활동가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차베스와 농장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알게 된 것이 내 삶을 바꿨습니다. 그 역사는 단지 세자르 차베스만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DNA에 새겨진 이야기입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조심스럽다. 차베스는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은 세자르 차베스 데이의 이름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공화당은 이 사건을 진보 진영의 우상이 무너지는 사건으로 적극 부각하고 있다.
「이번 주, 우리는 영웅 한 명을 잃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나 무르기아와 데브라 로하스라는 두 명의 새로운 영웅을 얻었다.」 — 한 NPR 칼럼니스트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운동의 가치와 운동가의 죄악을 분리할 수 있는가.
전태일 열사의 비극이 한국의 노동운동에 불을 붙였듯이, 차베스의 투쟁은 미국의 농장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권리를 가져다 줬다. 그의 이름으로 이뤄진 포도 불매운동은 수천 명 노동자의 임금을 올렸다. 그가 싸워 쟁취한 캘리포니아 농업 노동 관계법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 성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성과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지울 수 있는가. 대의가 개인의 죄악을 면죄할 수 있는가. 운동의 이름으로 요구된 침묵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 사건은, 우리에게 영웅 서사를 다시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베스는 분명히 위대한 것들을 이뤘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두 사실은 모두 진실이다. 편리하게 어느 하나를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이 사건이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새 이야기는 차베스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95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입을 연 돌로레스 우에르타의 이야기, 그리고 수십 년을 침묵 속에 살아온 아나 무르기아와 데브라 로하스의 이야기. 그들이 오늘의 진짜 '라 카우사'를 완성하고 있다.
에필로그 — 3월 31일이 다가온다
올해 3월 31일, 세자르 차베스의 생일을 기리는 공휴일이 도래한다. UFW는 행사를 취소했다. 도시들은 기념행사 이름을 바꾸거나 폐지를 검토 중이다.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공원의 차베스 동상 주위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의 포도밭에는 오늘도 새벽 다섯 시부터 노동자들이 나온다. 최저 임금을 받거나 그 이하를 받으며, 살충제가 뿌려진 밭에서, 화장실도 없는 땅에서. 그들 중 많은 수가 스페인어를 쓰는 이주 노동자들이다.
그들을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싸움이 누구의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지, 미국은 지금 다시 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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