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반도체 전쟁,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하)

세계는 반도체 전쟁,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하)

청원닷컴 / 청원닷컴 편집인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의 TSMC와 한국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55%대와 17%대를 오가고 있다. 최후에는 승자독식이 될 것이라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두 기업 모두 거침없는 투자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현재로서 삼성전자는 TSMC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


먼저 TSMC와의 수율경쟁에서 뒤지고 있다. 양사의 반도체 수율은 정확한 판단이 어렵지만 심하게는 TSMC가 최소 60% 이상인 반면 삼성전자는 30%대에 머물고 있다는 주장들도 일각에서 나온다.


3나노급 공정에서 삼성전자는 기존의 핀펫(FinFET) 공정보다 한 단계 앞선 GAA(Gate-All-Around) 공정으로 TSMC에 맞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기술면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에 앞서 있지만, TSMC는 3나노 공정까지는 자신들이 안정적 수율을 확보하고 있는 핀펫 공정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GAA의 신기술로 높은 수율까지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 되고 있다.


생산장비 측면에서도 불리한 입장이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 노광장비인 EUV는 현재 TSMC가 삼성전자보다 두 배 가량의 대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세계유일의 제조업체인 ASML은 지난해에도 삼성전자보다 TSMC에 더 많은 물량을 할당했다.


고객과의 관계도 문제다. TSMC가 ‘자신들의 고객과는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표방하고 있는 데는 다분히 삼성전자를 겨냥하고 있는 바가 크다. 팹리스(Fabless) 기업들로서는 자신의 설계를 경쟁제품을 만들고 있는 삼성전자에 넘기기가 쉽지 않다.


주변 산업과 공생하기 위한 반도체 생태계가 대만에 비해 지나치게 열세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디자인하우스, 펩리스, 후공정 등 어느 것 하나 대만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팹리스의 경우 세계 10대 기업에 미국과 대만이 각각 6개와 4개씩이지만 국내 1위 기업인 LX세미콘은 여기에 끼지 못하고 있다.


대만 팹리스 기업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 안팎을 오가는 반면 우리나라는 1%대 정도다. 대만에는 크고 작은 팹리스 기업들이 지천에 깔려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고작 100여개 정도가 있을 뿐이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이의 교량역할을 하는 디자인하우스의 경우 대만 1위 기업인 대만글로벌 유니칩이 국내 1위 기업인 에이디 테크놀로지보다 두 배 가까운 매출우위를 점하고 있고 후공정(OSAT) 역시 대만기업인 ASE가 세계 시장에서 절대적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TSMC라는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주변에 잘 포진된 관련기업들이 유기적 생태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대만과는 달리 우리는 삼성전자가 대부분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투자는 기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 여기에 세액공제와 같은 정책적 지원은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삼성전자가 TSMC와 경쟁에서 이겨내자면 고객으로부터의 신뢰는 절대적 요소다. 제대로 경쟁하려면 언젠가 파운드리 사업의 기업독립은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법률적, 제도적 보조가 필요하다. 한국의 법제상 독립한 파운드리가 고객 기업의 설계를 유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팹리스 고객들이 확신할 수 있다면, TSMC와의 경쟁은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소부장 기업들과 함께하는 산업이다. 소재나 부품을 개발하면 이를 테스트하기 위한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허다하다. 고가의 장비를 공유하는 방식 등과 같은 세심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디자인 하우스나 국내외 펩리스 기업들을 위해 특별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돈벌이에 국경이 있을리 없다. 국내 기업만으로 부족하다면 신흥 팹리스 성장국가, 혹은 경쟁국가의 기업들까지 국내에 끌어들이는 적극적 방안도 모색해볼 수 있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 머리를 짜내서 생각해보면 정부가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해 지원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지원을 아낄 이유도 없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분명해진다.


경쟁국들이 합종연횡을 해가면서 자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동안 우리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별다른 외교적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뒤늦게 나온 지원책은 고작 세금 ‘깎아주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마저 옥신각신 시간만 끌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답답한 마음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비즈시느 포스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비즈니스 포스트의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0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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