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재판관을 탄핵할 수 있는가?
이런 경우를 가정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범죄혐의가 분명한 유력한 어느 정치인이 있다. 검사는 그 정치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를 심사한 판사는 일부 혐의에 대해 소명됐음을 인정했지만, 그가 유력한 정치인임을 감안하여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 정치인이 유죄임을 확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판사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은 판사의 탄핵을 주장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유감스럽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조금만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런 일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탄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판사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거나, SNS 등을 통해 판사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고, 조금 더 나아가 그를 비난하는 정도일 것이다. 판결은 판사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일치된 합의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판결의 견해를 가진 판사를 탄핵하고, 견해의 차이가 판결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 사회가 판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판사의 판결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무수히 발생하는 분쟁과 범죄의 시비는 이제 어떻게 따져야 할까? 이 궁국의 수단을 넘어서는 순간, 더 이상의 합의된 문제해결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힘과 세력이 분쟁을 해결하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좋던 싫던 견해가 다른 판사의 판결을 인정하는 이유다.
판사의 판결은 완벽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판사의 양심에 따른다는 합의 자체가 판결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인간의 양심이야말로 시시각각으로 불완전해지는 그 어떤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사회가 판결의 불완전성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3심 제도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명의 판사들이 각각의 양심적 판단을 제시하는 합의부가 존재한다. 이해관계가 있는 판사를 재판에서 제외하기도 하며, 추첨을 통해 재판을 할당하기도 한다. 판결의 결과가 사회적 합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다양한 장치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판결은 항상 존재한다. 억울한 판결로 거의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우리는 끊임없이 듣게 된다. 아무리 완벽을 기하더라도,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판결의 속성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의 결과일 수 도 있다. 오죽하면 히포크라테스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날아가고 판단은 어렵다”라고 일갈했을까?
잘못된 판결을 했다 하여, 우리 사회는 그 판사를 탄핵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판사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판사를 탄핵하거나 재판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경우는 오직 판사가 그 재판에 대해 아주 명백한 이해관계나 의도를 갖고 판결했을 때 뿐이다. 예를 들어 비록 아주 오랜 경륜을 지닌 대법원의 재판관이라할지라도, 그가 만약 누군가와 재판거래를 했다면, 이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판사에 대해 추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조차 다시 재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판결의 결과는 뒤바뀌지 않는다. 제 3자의 양심적 판단에 의한 결정을 사회가 존중하기로 합의한 때문이다.
잘못된 판결은 누군가에게 큰 아픔이다. 그럼에도 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재판이라는 시스템이 우리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나마 우리 사회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제 3자의 양심적 판단이라는 형식은 그래서 중요하다.
좋던 싫던 판사의 판결은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
정치인 이재명에 대해 유창훈 판사가 내린 불구속의 결정은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 하더라도 이를 수용해야 하며, 혹여 그 판사를 탄핵하지는 주장은 얼척이 없는 얘기다. 이는 11월에 예정된 다른 두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죄를 판결하든 유죄를 판결하든, 판결은 판사의 몫이며, 수용하는 것은 모든 사회의 몫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우리 사회가 판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검사든 판사든, 법의 위임을 받고 재판에 관여하는 공적 업무의 담당자들에 대해, 탄핵을 운운하는 것 차제가, 결국 합의된 우리 사회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지금 그 엄청난 일을 국민들이 믿고 만들어준 제 1 야당이 해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왕정이 아닌 법치국가가 된 이래 아마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
조광태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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