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태 칼럼] ‘명예’와 ‘명성’ - 압구정 박스녀와 신체 노출 공무원에게 부침

[조진태 칼럼] ‘명예’와 ‘명성’ - 압구정 박스녀와 신체 노출 공무원에게 부침

조진태 / 전임기자

사회 속에서 인간이 갖는 명예는 ‘나의 가치에 대한 타인의 견해’로 볼 수 있다. 이 명예는 ‘나에 대한 타인의 견해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쌓아갈 수 있다. 그래서 ‘명예는 외면적인 양심’이며, ‘양심은 내면적인 명예’라고도 정의한다.

이러한 명예는 쉽사리 무너질 수 있지만 누구나 얻을 수 있다. 자신과 가정, 그리고 일속에서 성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주변의 칭송에 따른 명예가 따라붙는다. 이에 비해 명성은 획득하기 어려워도 일단 획득하면 지속성을 지닌다.

명성은 비범한 공적에 따른 대중의 평판에 따라 얻어지는데 이 공적은 양심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또 타인의 평판도 시대와 공동체가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사회적, 역사적 속성을 지닌다.

이제 임진란 당시 군인으로 전사한 세 명의 장수인 삼도 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충청 병마절도사 황진을 살펴보자. 이 중 가장 낯선 이름은 역사적 명성을 얻는 데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한 황진이다.

그러나 임진란 개전 초기 군인 황진의 삶을 조명하면 최고의 명예 훈장을 받기에 한치도 부족하지 않다. 작가 김동진의 역사소설 ‘임진무쌍 황진(교유서가 刊)’은 실록 등 사실에 기반해 황진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그는 전란 발발 이태 전에 통신사 호위 무관으로 일본 길에 올라 전란의 발발을 예단하고 부단히 첩보를 수집, 귀국 후 지금의 화순지역인 전라도 동북현 현감으로 일하면서 군비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전란이 터지자 전라도로 가는 길목인 이치에서 왜군을 격멸하는데 선봉에 섰으며, 단기로 왜군 포위망에 갇혔지만 이를 뚫고 나온 맹장(猛將)이었다.

이어 죽주산성에 웅거한 왜군을 고작 4분의 1의 병력으로 유인, 섬멸해서 경기도 일대의 왜군 세력을 경상도로 밀어내는데 결정적인 무훈을 세운 지장(智將)이기도 하다. 또 충청 병사의 신분으로 이미 죽음이 예견된 2차 경상도 진주성 전투에 합류, 수성의 최고 사령탑으로 전력을 다하다 전사한 용장(勇將)이다. 전란 초기 눈부신 활약을 벌였지만 짧은 생애로 인해 역사적 명성은 그보다 미약했던 것이다.

‘임진무쌍 황진’은 임진란 당시 사료에 기초한 장군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현실로 재현해 놓았다.
이제 대비적인 두 인물, 이순신과 원균을 살펴보자. 이순신의 경우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명예와 명성을 두루 갖춘 우리나라 최고의 장수다. 막강 조선 수군을 태동시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했다는 명성이 쌓이는 과정에서 그의 삶은 명예로웠다. 모함으로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 기간에 그토록 아끼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궤멸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도 명량에서 왜군과 맞서 절망을 희망으로 뒤집어 놓은 명장이며, 조선의 군신이었다.

이에 비해 원균은 당대나 지금까지 여전히 명성은 높지만 이순신과는 정반대의 경우일 것이다. 한산도에서 5년여 동안 이순신이 양성한 막강 수군을 딱 한 차례 전투로 모두 수장시켰다. 이는 결코 우연한 실수가 아니었다.

원균은 준비와 정탐, 전술과 전략 그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술주정꾼이라는 사실은 실록 등 각종 사료가 증명한다. 그의 명성에서 명예는 한 줌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동안 이순신의 승리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깨닫게 한 공로는 있을 것이다. 복잡한 정치 역학 탓에 무능한 선조와 엮이면서 당대에 얻은 명성이 후대에도 유전되고 있을 뿐이다. 그 명성의 본질은 이순신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이제 현실로 돌아오자. 명예와 무관한 명성이 돈과 일시적인 대중 권력을 부여하는 시대다. 타임지는 지난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시 인터넷 혁명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유튜브에서 따온 ‘YOU’를 선정, 위대한 사람보다는 ‘당신이’ 주도하는 커뮤니티와 공동작업이 훨씬 의미 있는 시대임을 선언했다.

그 예언은 적지 않게 들어맞았다. 이제 현대인들은 개인적인 명예보다는 대중적인 명성에 더 집착한다. 상의를 벗고 박스만을 걸친 채 압구정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의 팬 미팅 표가 매진되는 세상이다. 한 공무원은 업무 시간에 신체 노출 성인 방송에 나서고 어떤 이는 가족이 유죄 선고를 받고 수감됐지만 이를 두고 ‘명성 놀이’를 되풀이한다.

여하튼 이들이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당대에 일정하게 그 대가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명성이 명예로운지를 한 번쯤 살필 필요가 있다. 후대에 이르면 그 명성이 독소가 되어 영원히 자신의 삶을 덧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늠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스스로 자문해 보면 된다.

“당신의 명성이 명예롭습니까? 내면의 양심에 따라 당신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진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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