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단계적 퇴출이라고? 정말? (하)

원전의 단계적 퇴출이라고? 정말? (하)

조광태 / 전임기자

지난 7월 초 유럽연합 의회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가 찬성했고, 독일이 반대했다. 하지만 50표의 커다란 차이로 원자력은 청정에너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지난 해 개최됐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법안 통과에 나름의 명분을 제공했다. 직접적인 탄소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됐다.


사실 유럽의 속내는 복잡하다. 주요 원전의존 국가들이 갈짓자(之)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 증표다. 귀가 따가운 환경론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원전을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그게 맘대로 될 리가 없다.


현대 산업사회에, 전기는 식량과 다름 없다. 공급이 수요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순간, 식량의 부족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한다면, 전기의 부족은 사회 전체의 마비를 의미하기 때문에, 언제나 수요량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 재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유럽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생존이 문제되는 마당에 원자력을 친환경이라 우겨서라도 명분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더하여, 원자력을 자신들의 독점적 산업경쟁력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의중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하면서 유럽연합 의회는 새 원전을 짓기 위한 조건으로서 △ 2045년 이전까지 건설허가, △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장에 대한 운영계획, △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지 않는 기술의 확보, 등을 내걸었다. 모두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원전의 친환경 요건 충족 문제는 당연 원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을 짓고 말고, 원전수출을 하고 말고, 여기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조만간 상품을 만들 때 사용된 전기에너지가 친환경이었는지의 여부가 상품의 시장진입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알고보면 유럽은 본격적인 사다리 올라타기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랄 수 있다. 자신들이 먼저 사다리에 다 올라가고 나면 사다리를 치우겠다고 이미 공언을 하고 있는 셈이고, 여기에는 원전강국인 프랑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음 단계인 핵융합 발전까지는 아직 날이 멀고, 그렇다고 당장 원전을 피해할 수도 없는 마당에 딱 자신들의 기술력만큼까지만 시장진입 조건으로 수용하겠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숨이 가쁜 상황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신발끈을 동여맨다 하더라도, 유럽의회의 요구조건을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령 핵 폐기장 확보만 하더라도 현재 정부 계획으로는 빨라야 2058년이다. 2050년에 맞춰 운영계획을 내놓기가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원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원전의 노력은 타당하다. 반면, 당장 숨가쁘게 돌아가는 원전기술력 확보 경쟁에서 뒤쳐져서는 우리 산업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원전을 둘러싼 유럽의 고민은 곧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다만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유럽쪽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완전한 탈원전이라는 이상적 목표까지는 어렵더라도,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그들보다 먼저 사다리에 올라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자칫 우리 산업의 생존문제와 결부될 수도 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정권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옳고 그름만을 따지고 있다가는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기 딱 좋은 시점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원전에 관한 국민적 이해를 모으고 서둘러 사다리에 올라타야 할 때다. 사다리의 끝이 탈원전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사다리 아래서 시시비비만을 따지고 있을 수는 없다. 전기가 식량과 같다면, 여기에는 정파적 이해관계가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비즈니스 포스트' 매체에 기고된 글입니다. '비즈니스 포스트'에 게시된 기사는 매체 편집진에 의해 다소의 편집이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곳에는 원본기사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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