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패망 관련 책들을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조선 패망 관련 책들을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흔히들 조선 패망의 원인으로 당쟁에 의한 지배층의 분열과 무능을 꼽고 있는데 관련 조선 패망 관련 책들을 보니 패망의 원인은 훨씬 구조적이고 심각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반정을 명분으로 집권한 인조와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을 겪는 과정에서 그들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하게 드러냈다.


인조는 즉위 이후 반정 공신에 둘러싸여 국정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고 국가 지도자로서 필요한 대외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

 

더욱이 전쟁 중에 나라의 지도자로서 과감한 결단력을 보이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채 신료들에게 지리멸렬 끌려가기만 했다. 어느 시기에는 유연하게 사태를 해결하려던 주화파의 이야기를 듣다가 또 어느 시기에 가서는 崇明 사대주의에 매몰되어 대책 없이 싸움만을 주장하는 척화파를 따르다가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당시의 신료들은 대부분 성리학에 근거하여 도덕과 예를 중시하는 명분론을 내세우면서 나라의 앞길을 챙기지 않고 또한 편으로 자신들의 사익 추구에 몰두하기만 했다.


조윤민 다큐멘터리 작가는 「두 얼굴의 조선사」라는 저서를 통해 조선이 패망하는 과정을 실록 등에서 사례를 찾아 실감 나게 기술했다. 저자는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백성들이 입게 되는 피해 사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조선 지배층은 건국 이후 신분제를 강화하고 사회의 위계 구조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모든 역량을 강화해왔는데 특히 성리학 이론이 정교해지면서 그에 따른 신분 질서와 위계 구조의 정당화 토대를 굳히는 데 열중했다.


왕족과 사대부가 결탁하여 철저하게 기득권을 추구하면서 오랫동안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17세기 이후 왕권 쇠퇴 이후 세도정치가 득세하면서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가 겹치면서 망국으로 가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작가는 “조선의 관료제도는 지배 세력에 의한 강제적 약탈 기구에 불과하다”면서 “도덕 정치로 위장하여 계급 정치를 공고히 할수록 권력의 공공성은 오히려 증발하여 국가 기능은 퇴화되고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조선의 패망 원인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파악한 정병석 교수의 분석도 공감이 간다.


정교수는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라는 책을 통해 조선 흥망의 역사를 경제ㆍ사회 제도 측면에서 분석했다.


성리학자 사대부들이 신분과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명분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이를 확산시키면서 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 사림파들은 대의명분의 관념 철학을 맹신하여 부국강병론을 배격하고 향촌의 자율성만을 강조하면서 조선의 경제를 더욱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 갔다.


정교수는 “조선은 민본정치를 표방해 정치와 사회의 안정에는 성공했으나 백성의 삶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성리학의 배타적인 이데올로기는 조선 사회의 폐쇄성을 강화하면서 산업 활동을 억제하고 상공업 발달을 저해시켰다”고 분석했다.


정교수는 조선의 경제력이 취약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조선이 스스로 선택하고 운영한 제도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폐쇄적이고 착취적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김기협 교수도 「망국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17세기 이후 사림(士林)파의 득세 이후 왕권 쇠퇴와 당쟁 격화로 국가 기본 기능이 쇠퇴해가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했다.


사회의 지식층 주류가 현실 변화에 대응하는 경세의 과제를 외면하고 형이상학적 과제에만 매달리면서 국가 기능은 저하되고 체제 안정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이들은 극단적 성리학 정통론에 집착해 독단과 독선으로 국정을 수행해 사회의 생산성과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주전파의 입장을 이어받은 노론 세력이 소중화주의에 빠져 청나라와의 관계를 소홀히 함으로써 전통 체제의 대체를 약화시켜 정상적인 발전의 길을 막게 되었다.


김교수는 “ 조선의 실패는 개항 이후 외세의 압력에 따른 잘못된 선택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유교 국가 체제를 발전시키기는커녕 유지도 못 한 세도정치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 책은 조선 패망의 원인으로 집권층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성리학을 대체로 꼽고 있다.


조선은 개국 초기 왕권과 신권의 적절한 견제와 민본주의 중시에 입각한 유교정치 실시로 사회 안정과 질서 유지를 도모했으나 17세기 들어 음성적 권력 조직인 사림의 득세로 당쟁이 격화되면서 정치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극단적 정통론이 정치 담론을 지배하게 되었다.


성리학자 사대부들은 신분제와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명분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여 폐쇄적이고 착취적인 체제를 구축하면서 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은 크게 위축되어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유산은 21세기 오늘날에도 걷히지 않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일부 주류층은 맹목적인 대미 사대주의와 친자본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를 맹신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계층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다.


조선의 사대부 지배층이 정권 유지와 기득권 옹호를 위해 성리학 명분론을 내세워 독단과 독선으로 흐르면서 백성들을 수탈하고 국가 발전의 길을 가로막은 폐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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