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6 코스(고내포구 - 광령리)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제주 올레 16 코스(고내포구 - 광령리)

백재선 / 전임기자

제주 올레길 16코스는 고내 포구에서 시작한다. 고내리는 제주도 내에서 한라산이 안 보이는 곳의 하나라고 한다.

 

주변 지역이 고지대에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고 있어 마을 이름이 높은 곳 안쪽(高內)-고내리이다. 그러고 보니 내륙으로 산이 가로막고 마을은 해안을 끼고 있어 한라산을 볼 수 없다. 포구는 바다 쪽으로 막힘이 없지만 소형 선박 몇 척만 정박해있어 한적했다.

 

 




올레길은 15코스와 마찬가지로 해안 도로로 계속 이어진다. 언덕배기를 오르니 널찍한 둔지인 다락쉼터가 있다. 잔디가 깔린 쉼터 여기저기에는 대형 기념석이 눈에 띈다.

 

 




「涯月邑境은 抗蒙滅胡의 땅(애월은 몽고에 항거하고 이적을 멸망시킨 땅)」 이라는 대형 비석이 우뚝 서 있다. 비석 사이로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에서 항몽 투쟁을 했던 김통정 장군과 제주에 있던 몽고 목자들이 일으킨 묵호의 난을 평정한 최영 장군 동상이 나란히 있다.

 

 




또 한쪽에는 「在日 高內人 施惠 不忘碑(일본에 거주한 고려인들이 베푼 은혜를 잊지 않음)」가 있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으로 간 고내인들이 타향에서도 고향을 잃지 않고 향리 발전을 위해서 이바지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2012년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쉼터에서 내려오니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해안도로 안쪽으로 이어진다. 언덕배기에 암석 절벽이 아닌 비교적 넓은 들판 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더운 날씨에도 시원하기만 하다. 바다 색깔도 쪽빛에다 감청색이 섞여 있어 눈이 몰리지 않았다.

 

 




올레길을 걷으니 신엄 포구가 나왔다. 포구는 작고 선박도 보이지 않았다. 포구 한쪽에 용천수가 흐르는 샘물과 태우가 놓여 있다.

 

 




포구를 돌아 올레길은 해안으로 비교적 넓은 단애 산책로로 이어졌다. 산책로는 길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서 걸으니 청량감이 솟아났다. 산책로 옆 바닷가 현무암은 파도에 씻겨서인지 모가 나지 않고 둥굴둥글했다.

 

 

 

 

 

언덕을 오르니 올레길은 작은 숲길로 연결된다. 해안 간 숲길은 따가운 햇빛을 막아줘 도보객들에게는 언제나 좋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비교적 넓은 들판이 나왔다. 넓은 들판 여기저기에 햇빛을 즐기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보였다.

 

 




다시 숲길에 나와 해안 들판 길로 걷다 보니 바다 쪽으로 길 아닌 큰 구멍이 나 있다. 인공으로 만든 길이 아니라 화산이 폭발할 때 마그마가 지나 용암지대를 형성하면서 바다로 연결된 용암길이다. 이곳 해변은 깎아지른 주상절리 절벽은 아니지만 크고 널찍한 용암 암반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암반 지역에는 큰 틈이 있어 여기저기 동굴 형태를 띠고 있다.

 

 




해변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해녀의 집이 나오고 바닷가 쪽으로 중엄 샘물이 보였다. 중엄 샘물은 해안에 있는 용천수로 중엄 마을 설촌 초기부터 마시는 물로 사용해왔다. 마을 사람들이 최근에 바다 쪽으로 방파제를 쌓아 해수 유입을 막으면서 아직도 식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구엄리 해변 널찍한 암반 지대에서 염전처럼 바닷물을 막아 소금을 생산해왔다. 구엄리 바닷가에서는 암반 위의 낮은 지형을 막아 들어온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한 돌 염전으로 유명하다. 구엄리 소금 빌레(돌 염전)는 넓이가 1,500평에 달해 1950년대까지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돌소금은 넓적하고 굵을 뿐만 아니라 맛과 색깔이 뛰어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애월 일대에는 구엄리, 중엄리, 신엄리라는 이색적인 지명을 쓰고 있는데 이 지명은 ‘엄쟁이’라고 불리는 넓게 펼쳐진 바위 지형에서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올레길은 사면이 방파제로 막아 아늑한 중엄 포구를 지난다. 포구를 지나자 올레길은 도로를 건너 내륙으로 들어간다.

 

 




민가 마을 담벼락에 보라색 작은 꽃이 사랑스럽게 피어 있었다. 수확을 마친 넓은 들판에 마늘을 말리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 작은 야산인 수산봉이 보인다. 수산봉 높이는 120m로 물메오름이라고도 한다. 수산봉 초입의 목재 계단을 따라 오르니 흙길이 나오고 바로 정상이 나왔다. 정상은 봉우리가 아니라 평평한 지형인데다 큰 나무로 둘러싸 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 없었다. 그동안 올레길에 있는 오름은 작은 오름이더라도 오름 정상에서 항상 주변을 전망할 수 있었는데 수산봉에서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정상에서 쉬지 않고 바로 내려오니 수산 저수지가 보였다. 수산 저수지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다. 저수지 한쪽에는 수산리 명물인 곰솔 나무가 긴 가지들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곰솔 나무는 수산리가 생길 때 심어져 지금은 마을의 수호목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 곰솔 나무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올레길은 수산리 민가와 들판을 가로질러 계속 이어진다. 올레길에 현무암 돌담으로 연결된 마을 안길도 보였다. 올레길 걷는 길목에는 유명 시인들의 시를 새긴 비석이 군데군데 보였다.

 

 




작은 내 건너편에 「수운교 수산지부」라는 현판이 걸린 집이 보였다. 수운 최제우로 天師로 하는 水雲敎는 1923년 이상용에 의해 서울에서 창시되었다고 한다. 천도교 교당은 본 적이 있지만, 수운교 교당은 처음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수운교가 제주도에서 받들어지는 것은 제주 사람들이 토속 신앙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인가 하고 짐작해봤다.

 

 




마을을 흐르는 냇가에 큰 샘(大泉)라는 소개문이 걸려 있다. 마을 설립 때부터 샘이 마르지 않아 마시는 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올레길은 민가와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산으로 향한다. 예원동 마을이 나오면서 비교적 새로 지은 집들과 큰 귤밭이 보였다. 올레길은 큰 도로를 만나면서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올레길에서 만나는 흙길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은 푹신푹신해 발이 편하기 때문이다.

 

 




산으로 오르자 삼별초 군이 흙으로 쌓은 토성이 나왔다. 항파두리성 토성은 전체 길이가 무려 6㎞나 달하는 장성이었지만 거의 허물어졌다가 지금은 1㎞ 정도 복원되었다고 한다. 토성 위에 오르니 멀리 바다가 보였다. 삼별초 군은 애월 바다로 올라오는 고려‧몽골 연합군에 맞서 이곳에서 진을 치고 결사 항전을 벌였다.

 

 




1273년 5월 고려ㆍ몽고 연합군은 삼별초 지도자 김통정 장군이 포진한 항파두리성으로 공격을 단행하자 삼별초 최후의 전사 70명은 결사 항전 끝에 전원 몰살당했다고 한다.


삼별초는 원래 고려의 특수 군사 부대였으나 고려가 몽고에 항복하자 이에 반기를 들어 저항했다. 그들은 진도에서 저항하다 제주도에 상륙하여 제주시 별도천을 시작으로 조천포, 성산 고성리, 애월 항파두리에 옮겨 다니면서 본영을 만들고 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목재 계단을 오르니 항파두리 항몽유적지가 나왔다. 당시 유적으로는 가뭄이 들어서도 물이 줄지 않아 삼별초 군이 길어다 마셨다는 구시물과 삼별초 군이 망을 보았다는 망머를밭 등이 남아 있다. 토성 안에 대궐터가 있었던 유적지라고 하지만 당시의 유적은 미미하고 요즈음 사람들이 만든 순의비와 기념관만 덩그러니 서 있어 허전해 보였다.

 

 




중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에 삼별초는 내란을 일으킨 반란군이라고 배웠지만 이제 몽고라는 외세에 맞선 항쟁군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역사 평가가 후세에 갈수록 달라질 수 있지만, 삼별초에 대한 추앙 분위기는 박정희 군사정권 말기인 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뭔가 꺼림직하다.


시간이 없어 순의비와 전시관을 둘러보지 못하고 항파두리를 빠져나와 올레길 중간점에 스탬프를 찍고 계속 걸어야 했다.올레길은 이제 산으로 향한다. 

 

 

 

 

넓은 들판이 나오고 민간가 나온다. 마을에 「Beverly Hills」라는 고급주택가가 보여 이채로웠다. 제주 도심 지역에 가까운 이곳에 고급 빌라촌이 들어선 것 같다.

 

 




올레길은 멀리 한라산을 보고 종점인 광령리로 향한다. 날이 맑아서인지 한라산이 어느 때보다 선명해 보였다. 여기저기 새로 지은 집은 많은 것을 보니 자연 풍광이 뛰어난 이곳으로 사람들이 이주해온 듯하다.

 

 




올레길 옆에는 비교적 큰 대나무밭이 있다. 대나무가 난대 식물로 알고 있는데 의의로 제주에서 대나무 보기가 쉽지 않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광령 1리 마을이 눈에 가까이 들어온다. 올레길 옆에 향림사라는 사찰 간판이 보였다. 절 입구에 돌하르방이 서 있고 절집은 황토 기와집이라 틔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울렸다.

 

 




올레길 옆 돌담에는 소담스러운 보라색ㆍ하얀 수국화가 피어 있었다. 지난해 5월 올레길에 수국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수국을 보니 그저 반가웠다.

 

 




마침내 광령 1리 동사무소 앞에 있는 16코스 종점이자 17코스 시작점에 도착했다.

 

 




이번 올레길은 부득이 집에 있는 애완견 루키가 많이 아파 일정을 하루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15‧16코스를 하루에 완주하다 보니 하루에만 5만1천 보(38km)를 걸었다. 근래 들어 가장 많이 걸었지만, 평지인지라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16코스 올레길은 해안, 오름, 중산간 지역으로 연결되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항파두리에서부터 한라산을 보고 중산간으로 걸어가는 길이 좋았다. 제주에 오면 날씨가 좋지 않아 낮은 지대에서 한라산을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날씨가 좋은 데다 올레길이 산을 향해 오르는 길이라 내내 한라산을 보고 걸을 수 있었다.

 

 


(2023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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