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민주주의-유혹하는 권위주의/앤 애플바움』를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꺼져가는 민주주의-유혹하는 권위주의/앤 애플바움』를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쇠퇴하고 권위주의가 득세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앤 애플바움이 쓴 『꺼져가는 민주주의-유혹하는 권위주의』라는 책은 歐美지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대신 권위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현상을 잘 짚어준다.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저자는 책에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독재 정권 출현과 함께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미국에서 극우 보수 세력의 등장을 실감 나게 기술한다.


실제로 저자는 오래전에 접촉했던 유럽의 보수우익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점차 권위주의에 물들게 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공산주의 동유럽 국가에서 민주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알게 되었던 이들 우파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오늘날 극우주의자나 권위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저자가 알고 있던 폴란드 인사들은 현재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의 핵심 세력이 되어 외국인 혐오와 편집증적인 정책을 양산하고 있다. 이들은 사법권과 언론 기능 약화를 가져오는 권위주의 체제 도입에 앞장서면서 공영방송 앵커나 기자들을 해고하고 대신 극우 온라인 미디어 출신들로 채우고 있다.


헝가리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헝가리 집권 여당은 들어오지도 않은 아랍계 이민자들과 소로스 같은 유대인들을 공격하면서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자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통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여당인 오르반 정권은 코로나 창궐을 이유로 법률 조작을 통해 언론과 선거를 전면적으로 통제하는 등 거의 독재와 다름없는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이탈하려는 브렉시트가 시작된 배경에도 보수주의자들의 노스탤지어에 기원을 두면서 개방 대신 폐쇄 사회로 가는 영국에 대해 흥미롭게 분석한다.


보리스 존슨 등 영국의 보수당 지도자들은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으나 과거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가 크게 일면서 브렉시트 찬성률이 더 높은 투표 결과가 나왔다.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힌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유럽연합은 영국 문화를 그저 그런 평범한 것으로 만들고 국가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원흉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영국이 다시 한번 무역, 경제, 외교 정책의 규칙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노스탤지어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잉글랜드가 세계에서 최고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 국제적 대외명분으로서의 민주주의보다는 훨씬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브렉시트에 찬성하는데 앞장섰다.


스페인의 극우 정당인 복스당도 카탈루냐 독립에 반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과거 프랑코 독재 정치가 구사했던 과시적 민족주의 캠페인을 통해 당세를 얻어가고 있다. 복스당은 정치적 양극화로 불편해진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 카탈루냐 분리주의 운동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극우 보수적인 세계관을 사회에 퍼뜨려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르펜당은 역사적으로 반드레퓌스파 지지를 토대로 반이민 정책에 불을 질러 당세를 확장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 내 극좌나 극우 이념의 신봉자 일부가 오랫동안 폭력을 이끌어왔다”면서 “트럼프의 당선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 정권이 도덕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근거로 하는 도덕적 등가성이 승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미국이 이제 러시아의 푸틴 등 독재 정권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되었으며, 미국은 다른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지구촌에 들이닥쳐 오는 권위주의의 엄습은 노스탤지어의 부활, 능력주의에 대한 실망, 음모론의 부상과 더불어 호전적인 담론 양산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논쟁적인 담론 출현은 정치적 정보를 전달하고 수용하는 방식에서도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편파적인 거짓 이야기가 인터넷에 들불처럼 확산되면서 온라인상의 정치적 양극화는 전통적인 정치와 주류 정치인을 불신하고 전문가나 사법부 경찰 공무원과 같은 기존 제도를 조롱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미국의 양당 협력 정치 붕괴, 동구권 국가의 일당 독재 출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시행, 스페인과 프랑스의 극우 정당 지지 확산세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저자는 권위주의 체제 등장에는 클레르(성직자)로 비유되는 엘리트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서구 자유주의 질서라는 관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현재의 가치를 훼손하고 새로운 체계의 도래를 꾀할 사상가, 지식인, 언론인, 블로거, 작가, 예술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극우 보수 지도자들에게 권위주의 이론을 제공하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역할을 한다. 동유럽, 영국, 미국 등지에서 클레르는 권위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 원칙을 수정하고 국민을 선동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날의 클레르는 새로운 정보 기술 덕분에 단순한 언어, 강력한 상징, 확실한 정체성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수단과 전술을 이용하고 있다.


반자유주의적 혹은 권위주의적 사상을 옹호하는 새로운 세대의 클레르들은 새로운 정보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합의를 훼손하고 사람들을 분열시켜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권위주의는 사람들을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누고 양극화하고 대립시킨다” 면서 “우리는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 거짓과 거짓말쟁이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위주의는 한국 사회에도 점차 엄습해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박정희‧전두환 군부 독재자들에 대한 찬양이 일어나고 그 당시가 살기에 좋다는 노스탤지어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의 득세는 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클레르에 비유되는 엘리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보수 정권이 출범시킨 종편 방송에서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엘리트들이 극우 보수적이고 편향적인 주장들을 시청자들에게 세뇌시키고 있다. 이들이 종편 방송과 SNS 매체에서 활약할수록 일반인들의 시각은 왜곡되고 사회는 분열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다시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갈 것인가? 깨어있는 시민들이 단합해야 권의주의의 부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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