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평전/김형수』를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문익환평전/김형수』를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대선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서재에 있는 문익환 평전을 꺼내 들었다. 무기력하고 암담하기만 한 현 상황에서 작은 빛줄기라도 찾으리라는 심정으로 평전을 다시 읽었다. 

 

문익환 선생은 자신을 버리고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참 스승으로 늘 다가온다. 70~80년대 암울한 군부 독재 시대 여러 차례 구속과 탄압에도 불굴하고 조국 민주화와 민족 통일을 위해 불굴의 투쟁 의지를 보여준 진정한 큰 어른이셨다.

문익환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 체제와 해방, 남북 전쟁과 분단, 군부 독재에 이르기까지 고난에 찬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김성수 시인은 평전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에 녹아들어있는 문익환 선생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저자는 이미 2004년 문선생이 남기신 글과 육성, 그리고 관련 사건 자료를 섭렵해 평전을 발간했다. 다시 5년여의 세월에 걸쳐 출생지인 북간도와 요코야마와 평양 등 선생의 발자취가 남긴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개정판에 많이 추가되었다.

저자는 2004년 처음으로 평전을 쓴 지 14년 만에 다시 개정판을 발간해 무려 20년 동안 문익환 평전 쓰기에 매달려왔다. 저자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 발굴한 자료에다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체를 입혀 문익환 선생의 일대기를 거침없이 살려냈다.

문선생은 1918년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스물한 살 때 도쿄 일본 신학교에 유학한다. 그는 일제의 징병을 피해 만주로 돌아와 신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신경에서 잠시 목회 활동을 한다. 해방 후 1946년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서울로 월남으로 이주해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 1949년 프린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한국전쟁 기간 중 UN 군에 지원해 통역자로 정전회담에서 참여한다. 1955년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한신대학교에서 교수로, 한빛교회에서 목사로 복무한다.

1968년부터 신‧구교 공동 성서번역의 책임위원으로 매진하다가 1976년 쉰아홉 늦은 나이에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주동자로 구속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다. 그 이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가담자로, 1985년 민통련 의장 역임 때 시국사건 주도자로, 1989년 전민련 고문 역임 때 방북 사건 당사자로,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위원장 역임 때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총 6차례에 걸쳐 12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수난의 삶을 산다.

문선생은 북간도의 어린 시절 친구인 윤동주와 송몽규, 그리고 후배인 장준하에 자극을 받아 운동권에 뛰어들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험난한 시기에 자기의 의지를 관철해간 경로는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특히 어린 시절 집안에서 형성된 영성을 바탕으로 섬김이라는 그리스도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늦은 나이에 관심의 초점을 교회에서 세계로 옮기면서 인권운동, 민중운동, 통일 운동의 선봉에 나선 것이다.

저자는 “문익환 목사가 민족주의적 기독교를 자임하게 된 것은 정서적 조국은 고구려이며, 영혼적 혈통은 유목민이라는 그의 뛰어난 역사의식의 산물”이라면서 “그는 늘 광활한 무대를 그리워했고 좁은 칸막이 안에서 형성된 기득권에 올라타 안주하는 것을 언제나 경계했다”고 강조한다.

문익환은 파괴된 인간의 마음을 가로지르며 죽임의 역사를 살림의 역사로 되살리고자 모든 힘을 다했다. 사람들은 그를 불명의 저항정신과 탁월한 지도력을 연상하지만, 그에게는 적을 미워하는 의지가 없었고 그의 행동에는 늘 전략과 전술이 담겨 있지 않았다.

평전을 읽으면서 문익환 선생의 일대기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대의를 쫓은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 신학대학 교수 ‧교회 목사‧성서 번역가라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58세 늦은 나이에 사회 운동에 참여한 것은 결국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익환과 용정 광명학교 동창인 정일권은 일제 만주군 부역자와 박정희 하수인이었다는 오명 때문에 역사에서 철저히 잊히고 있지만, 문익환은 민주주의와 통일 운동의 사도로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담한 결단과 행동에 나선 점도 두고두고 존경할 만하다. 그는 1989년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북을 감행해 김일성을 만나 남북 간 첫 합의서인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귀국 후 엄청난 반발과 공안 정국 조성이라는 후폭풍을 맞았지만 남과 북의 지도자는 합의서 발표 후 11년 만에 ‘6.15 공동선언’에 합의함으로써 냉전적 분단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평화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의 담대한 마음과 열정적인 행동은 저자의 언급처럼 유목민적 영혼과 고구려인의 기질대로 마음의 울타리를 두지 않으려 했던 그의 천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의 삶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기독교인으로 다른 사람을 늘 섬기고 사랑을 실천했다는 데 있다. 한때 조선 기독교의 성지라고 불렀던 평양 출신 기독교인들이 남한 땅에서 독재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만 똑같이 월남한 문목사는 기독교의 회개를 외치고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교도소에서 교역자나 수형인들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노동자와 젊은 대학생들과 항상 소통하려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교도소에서 몸소 체득한 의술을 힘닿는 대로 병약자들에게 제공했다.

최근 들어 핵가족으로 가족 공동체가 거의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국의 패망과 외세 및 독재자의 탄압이라는 질곡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가족 간의 우애와 경쟁 속에서 훌륭한 가문 전통을 유지한 점도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가 사회 운동가로 감옥에 갇혔지만 90대의 부모님은 70대 운동가 아들을 늘 격려했고, 그의 자식들은 교도소에서 또는 재판장에서 아버지의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를 기록하여 사회에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문익환 선생이 1994년 74세의 나이로 별세하신 지 거의 한 세대가 이르지만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민족 분열을 도모하고 민주 정치를 퇴행으로 이끄는 자를 선출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우리는 최근에도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수구 보수 세력들의 발호로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도자로 뽑아 역사의 후퇴를 경험했지만, 또다시 이들 세력의 부상으로 역사의 후퇴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암담하기만 하다.

이번 선거 결과 때문에 많은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대의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타인을 섬겼던 문익환 선생의 삶을 음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꿈과 사랑을 보여준 그의 삶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문익환 선생은 먼발치나마 뵙게 된 것은 1987년 7월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던 이한열 열사 장례식장이었다. 전날 전주 교도소에 출옥한 문선생은 이날 군부 독재에서 목숨을 잃었던 26명의 젊은 열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쳐 불러냈다. 땅과 하늘에 대고 외치는 그의 절규는 장례식장을 메운 대중들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어가 슬픔으로 메아리쳤다. 당시 문선생의 처절한 외침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문선생은 북간도 출신이지만 『선구자』보다는 『마른 잎 다시 살아나』라는 민중가요를 더욱 좋아했다고 한다.

1994년 1월 선생의 영결식 날 동숭동 대학로 노제에서 안치환 가수가 부른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따라 부르면서 선생을 보내야 했다.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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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청원닷컴 2022.11.2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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