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관련 책을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루쉰』 관련 책을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얼마 전 한 인터넷 매체에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교과서에 모두 실린 유일한 작가는 중국의 루쉰이라는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다. 근대 들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서구 사조가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로컬 사상과 문화는 크게 쇠퇴했지만, 루쉰의 작품은 이 지역에서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루쉰은 1881년 중국 浙江省 紹興에서 태어나 1936년 폐암으로 죽기까지 작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청나라가 망하고 중국 대륙이 외세 침략과 내전에 휩싸이는 격동기 시대 상황에서도 루쉰은 모든 허위를 거부하고 현실에 기반을 둔 작품을 남겨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높은 명성을 얻었다.

 

루쉰 관련 책들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루쉰 평전 중 가장 관심 있게 읽은 책은 일본의 문화 평론가인 다케우치 요시미가 일찍이 쓴 루쉰과 루쉰 연구에 평생을 바친 중국 리시엔즈가 쓴 인간 루쉰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책에서 루쉰의 사상 형성, 작품, 정치와 문화 등으로 구분하여 루쉰 일대기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뤘다. 그는 루쉰을 중국 최대의 계몽가이자 사상가로 일컬으면서 중국 근대사상사에 있어 쑨원과 마오쩌둥을 매개시켜주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다케우치는 쑨원이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며 루쉰은 중국 근대 문화의 어머니라고 평가하면서 근대 중국이 그 자체의 전통에서 자기 변혁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루쉰이라는 매개자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고 루쉰은 그러한 과정에서 요구되는 희생을 자신의 한 몸에 짊어졌다고 강조한다.

 

그는 루쉰의 삶이 죽음과 삶, 희망과 절망, 정치와 문화 등의 측면에서 본질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데 이러한 모순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루쉰이 죽음을 결의하면서 回心을 얻었고 쩡짜를 통해 자신을 단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케우치는 루쉰이 진화론에서 마르크스주의로 발전했다기보다는 그가 즐겨한 '쩡짜(사력을 다함)'를 통해 자신을 단련시켜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을 끌어내는 형태를 계속 취했다면서 루쉰의 쩡짜 방식에 의한 삶의 추구는 일반적인 사상가나 선각자와 구별된다고 강조한다.

 

리시엔즈는 장장 1,600페이지에 걸쳐 인간 루쉰을 썼다. 이 책은 루쉰이 남긴 소설, 평론, 서신, 강연록은 물론 루쉰 관련 잡지와 신문 기사들을 샅샅이 수집하여 그의 일대기를 상세히 다뤘다.

 

리시엔즈의 인간 루쉰은 방대한 내용과 디테일한 서술 때문에 일반인들이 루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책의 방대함은 그 내용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함으로써 인간 루쉰에 대한 일반인의 거리감을 좁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리시엔즈는 루쉰의 일대기를 외침과 방황 두 단어로 요약하면서 그는 화석화된 중국의 문학을 생생하게 활력이 넘치는 것으로 변모시켰고 자신의 생명과 불꽃을 태워서 수많은 추종자의 정신을 견인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루쉰이 보통 사람처럼 일상에 허덕인 채 직접 생계를 꾸려왔다는 점을 들어 루쉰의 위대함은 평범함 속에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앞과 뒤를 동시에 경계하는 엉거주춤한 모습에서 평생을 살아온 모로선 병사로 루쉰의 고단한 삶을 묘사한다.

 

루쉰은 평생에 걸쳐 우익 인사들뿐만 아니라 좌익 작가들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그들과 맞서 자신을 지키고 오히려 그들을 개조시키기 위해 죽는 날까지 글로 싸워야 했다. 루쉰이 좌익작가동맹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그들을 반박하는 내용이 책 하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리시엔즈의 루쉰 평전은 루쉰을 이념이나 도그마에 가두지 않고 루쉰의 생애를 일상의 삶 속에서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돋보인다. 이는 중국 내 재야인사인 저자가 이념에 크게 개의치 않고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사실대로 기술하려 했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싶다.

 

쑨위의 루쉰과 저우쭈어련과 저우하이잉의 나의 아버지 루쉰도 루쉰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쑨위의 루쉰과 저우쭈어련은 루쉰과 그의 동생 저우쭈어련의 일대기를 다뤘다.

 

형과 동생은 1910년대 중국 신문화 운동의 주역으로 행동을 같이했지만, 어느 순간 가정사로 인해 불화를 겪으면서 두 사람의 인생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서로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형 루쉰은 중국 민족 개조와 혁명 정신 고취를 위해 자신을 불태웠지만, 동생 저우쭈어런은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면서 친일 행각까지 벌여 인생의 크나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저우쭈어런의 삶은 일제 때 민족 개조를 주창하다가 친일로 돌아선 이광수를 생각하게 한다.

 

루쉰의 유일한 생육인 저우하이잉이 쓴 아버지 루쉰은 루쉰의 가족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책에서는 60년대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서 강청을 비롯한 극좌 세력들이 루쉰의 작품 원고를 탈취했지만 이를 찾는 저우하이잉과 그의 어머니이자 루쉰 부인인 쉬광핑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우하이잉은 이 책에서 루쉰이 계속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생각을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모택동은 루쉰이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감옥에 갇혀 글을 쓰고 있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아무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루쉰에 대해 공자는 봉건사회의 성인이고 루쉰은 신중국의 성인이라면서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주자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이자 위대한 혁명가라면서 중국인들이 본받아야 할 자아 해방의 기치로 여겨야 한다라고 강조했었다.

 

마오쩌둥의 이 같은 평가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지금까지 루쉰을 평가하는 도그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루쉰이 살아있다면 아마 누구보다도 이러한 평가를 거부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루쉰에 대한 마오쩌둥의 이중적인 평가는 시사 한 바가 크다.

 

왕후이의 절망에 반항하라라는 책은 그의 학위 논문을 바탕을 쓴 책이라 내용이 다소 전문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왕후이는 루쉰의 글을 역사적 중간물로 특징하고 그의 일생은 외침과 방황으로 가득 차면서 복잡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왕후이는 루쉰의 사상적 유산은 오늘날까지 중국 지식인의 비판 사상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는 점을 꼽고 있다.

 

루쉰은 작품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합법화와 지식과 불평등한 관계의 은밀한 연관을 폭로했고 날카롭고 깊이 있는 사회 비판 속에서 자신의 인격에 대한 형상화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왕후이는 또한 과도기적인 시대 상황에서 루쉰 소설은 모두 절망에 반항하는 인생철학의 발현이자 결과이며 외침과 반항의 존재 자체는 바로 정신적 상징이다라고 강조한다.

 

루쉰은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깊은 현실체험을 통해 이중 절망에 직면하는 인생철학을 창조적으로 구축했으며 인간은 반항을 통해 인생과 세계를 체험하고 여기에 창조적인 의의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왕후이의 책은 전문 비평서답게 문학 비평가들의 이론은 물론 철학자들의 사상들을 접목시켜 루쉰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 루쉰의 복잡한 정신세계와 작품의 문화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루쉰 관련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다.

 

루쉰은 개인적으로 불우한 인생을 살았지만, 병으로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면서 자신을 불사르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루쉰은 망해가는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원하지 않는 결혼과 동생과의 불화 때문에 평생을 그늘지게 살았지만, 작가로서의 엄격함과 성실함을 유지하며 본분을 다했다.

 

루쉰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모든 허위의식과 도그마를 경멸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삶을 살아왔다.

그는 권력자에게 민중에게도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말과 글을 드러냈다. 이념적 대립 갈등이 치열한 상황에서도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주체성을 견지해왔다.

 

루쉰의 엄격함과 까칠함은 당대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그는 젊은 예술가(노동문화·작가·목판화 작가)들 양성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였다루쉰은 자신이 사다리가 되어 젊은이들이 웅지를 펴기 위해 그를 밟고서 기꺼이 오를 수 있기를 바랬다. 특히 혁명의 와중에서 희생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자비로 발간해주는 인간적인 숭고함을 보여주었다.

 

루쉰의 지칠 줄 모르는 번역 활동과 연구 생활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이 직접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처지였지만 중국 민족성의 개조를 위해 의식 있는 외국 문화 작품을 번역하고 문학 이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앞장서 왔다.

 

중국 문예 비평가인 리장즈는 루쉰이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단순한 생물학적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루쉰의 생애를 압축해 평가한다.

 

루쉰의 메시지는 그의 글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산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좌절하고 실패하고 절망하면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길이 없는 곳에서도 길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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