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배병삼』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배병삼』

백재선 / 전임기자

중국 철학에 관심을 갖다 보니 조선 시대를 지배해온 유교가 현시점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에 그냥 입시 공부를 위해 배웠던 유교의 주요 원리인 三綱五倫이나 전통 제례 의식은 고리타분하고 현대에 맞지 않는 구습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더욱이 성리학 문구 해석을 놓고 빚어졌던 유학자들의 완강한 당파 싸움이 조선을 멸망시킨 요인 중의 하나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상담 부분 공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논어를 읽게 되면서 공자의 진면목을 점차 알게 되었고 후대 학자들이 세운 유교 원리가 초기 공자·맹자의 사상과 많이 뒤틀려져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배병삼 교수가 쓴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현대인이 쉽게 품고 있는 유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나름대로 불식시켜주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유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크게 三綱五倫(삼강오륜)에 의한 권위주의적인 가부장제도 공고화, 충효에 의한 맹목적인 복종 의식 강요, 공익 대신 가족중심주의 또는 연고주의 중시 등이 꼽힌다.

 

배교수는 유교에 대한 세간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유교의 핵심 이념인 三剛과 五倫에 대해서 배교수는 五倫이 상호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의 정통이 될 수 있지만 三剛은 타락된 왜곡 이념으로 변질되었다고 단언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ㆍ군신유의(君臣有義) 오륜에서 강조하는 親과 義는 군주와 신하 쌍방이 상호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일방에게 적용되는 규범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교가 후세 권력자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면서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 등 三綱은 주종관계의 윤리이자 권력층의 통치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배교수는 충효(忠孝)라는 개념도 애초 논어나 맹자에서 쓰인 적이 없고 춘추전국시대 국가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 법가의 규범에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忠孝를 기반으로 한 멸사봉공, 대의멸친, 상명하복 등은 일본식 사무라이 전통에 기인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유교적 덕목으로 인식되는 왜곡을 가져오게 되었다.

 

유교가 공공의 업무를 혈연의 사사로움으로 망가뜨린다는 이른바 가족중심주의 또는 연고주의를 유교의 탓으로 돌리는 세간의 주장에 대해 배교수는 오해라고 주장한다.

 

공자와 맹자는 피와 살이 튀는 춘추전국시대에 인간과 사회를 관념적으로 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간의 운명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고 설파했다.

 

공자와 맹자는 이 같은 문명 건설을 위한 초석으로 가족의 재건을 중시했고 이를 위해 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실천 이념으로 제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실천 이념은 폭력이나 강제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권력적 야망이 아니라, 내 몸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원초적 사랑을 닦고 가다듬어 학연이나 지연의 문지방을 넓히고 국가와 민족의 한계를 넘어서 온 세상에 사랑을 퍼뜨리려는 人間愛에 대한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맹자의 정치사상이라고 일컫는 爲民정치나 民本정치도 당초 맹자가 주장한 인민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작동하는 정치 세계가 아니라 후세 위정자들이 인민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오히려 백성들을 도구로 활용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배교수의 책을 읽고 나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김경일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봤다.

 

김교수는 이 책 서문에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 요인으로 유교가 인문의식, 온고지신, 조상숭배 등을 너무 중시하여 법치가 되지 않는 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부모에 대한 효도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심지어 공자가 검증 불가능한 인물들의 가치와 허구 속의 가치를 전파하면서 동아시아 사회에 거짓과 왜곡을 끌어들인 장본인이라고 혹평했다.

 

이러한 김교수의 주장은 너무 지나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공자·맹자의 사상이 후대에 갈수록 봉건제 하의 왕정 체제를 유지하는 통치 논리로 활용된 점은 분명하지만, 이는 후세의 유학자들이 권력과 부합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공자와 맹자가 원래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본다.

 

후대 유학자들은 爲政者들과 함께 백성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新民 의식을 중시하면서 지금 여기의 문제를 대중들과 함께 해결 해소하려 들지 않고 대중들을 가르치려만 했다. 결국에는 유교는 왕권 정치를 공고히 하는 통치 논리가 되면서 공자·맹자의 사상은 후대에 와서 크게 왜곡되어 버렸다.

 

전쟁과 폭력이 얼룩졌던 시대에 공자가 사람을 중시하고 仁을 통한 인간관계 회복을 강조한 점은 지금에 와서도 사람들이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로 남아있다.

 

배교수는 무엇보다도 유교의 정신을 초기의 공자 사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교적 인간상은 위하여가 없는 칼칼함”에 있다면서 “나를 위하여 너를 이용하지 않고 너를 위하여 나를 소모하지 않고 다만 내 역할과 직분에 충실한 데 있다”라고 강조한다.

 

2천 5백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논어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훌륭한 교본이 되고 공자는 영원한 사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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