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철학사』(유대철)를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대한민국 철학사』(유대철)를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철학책을 읽으면서 우리 철학과 우리 철학자에 관한 책이 많지 않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우리가 주로 읽는 철학책은 대부분 해외에서 들어온 것이다. 물론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을 둔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필로소피아(philosopia)가 일본을 거쳐 동아시아에서 공용어가 되었다.

 

자신을 철학노동자라고 내세운 유대철 작가는 『대한민국 철학사』라는 책에서 기존 철학사와 다른 관점에서 한국철학사를 집필했다.

 

기존의 한국철학사 관련 책들은 삼국시대부터 우리 사회에 들어온 유교·불교 도교의 사상 논쟁들과 함께 근현대 들어 서양철학과 전통철학의 비교를 큰 흐름으로 엮어 소개하고 있다.

 

철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시대는 유학과 성리학이 사상과 정치를 지배했으나 엄격하게 말하면 이들 학문은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우리 본래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조선 성리학은 주자학 일변도로 다양한 학문과 사상 도입을 허용하지 않아 고루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18세기 들어 양명학과 실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출현했지만, 이들도 유학자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독일 철학 등 서양 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많지만, 우리 전통 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철학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우리 철학의 기원을 대한민국 출범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해방 이후 정부 수립부터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다.

 

저자는 일제시대 이후 강단에서 활약해온 철학자들을 배제하고 삶 속에서 철학을 실천한 재야 사상가들을 진정한 우리 철학자로 본다. 책에서 소개하는 우리 철학자들은 함석헌·류영모·문익환·장일순·권정생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고난의 시대를 겪으면서 살아온 기층 민중들의 삶에 천착하고 희망을 찾았다.


이들은 고난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삶이 뜻있는 사람인지 부단히 고민했고 현실의 고난 속에서 뜻을 이루며 살아가려 한 철학자들의 고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저자는 함석헌·류영모·문익환·장일순의 철학을 이렇게 소개한다.


함석헌의 철학은 고난의 형이상학이다. 함석헌은 외적 초월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의 희망을 찾았고 고난의 주체인 나와 우리가 철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함석헌이 말하는 철학은 자기 소리를 내는 것, 현실의 부조리와 싸우는 철학, 현실의 고난을 긍정하는 철학, 자신이 중심이 되는 철학이다. 철학이란 결국 나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며, 그 저항으로 인간은 온전한 주체가 된다.

 

류명모의 철학은 씨알의 형이상학이다. 류영모는 나와 하느님의 하나 됨과 너와 하느님의 하나 됨을 이야기한다. 나와 너는 큰 나무의 서로 다른 과일이며 하느님을 향하는 씨알을 가지고 있다. 씨알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본 모습이며 씨알은 아집을 버린 얼나인 민중이다.


문익환의 철학은 사랑으로 하나됨의 형이상학이다. 문익환에게 사랑은 현실을 진선미의 공간으로 만들고 사랑은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다. 문익환의 철학은 또한 ‘발바닥 철학’이다. 발바닥이란 민중을 의미하며, 그의 철학 전체는 민중을 향해 있다. 민중 스스로 주체가 되어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민중의 아픔에 주인의 자리를 내주는 철학이 바로 문익환의 발바닥 철학이다.


무위당 장일순의 철학은 ‘나락 한 알’의 형이상학이다. 장일순은 자연에 순응해야 하고, 자연은 소유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자연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은 도를 자신의 것이라고 자만해서 안 되고 도는 나의 아집을 벗고 타인에게 자기를 내어주므로 다가오는 존재의 이상향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압제와 독재 시대의 그 잔혹함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민중에게 다가가 민중과 우리가 되어 민중의 철학함을 만들어가고자 했다. 이들은 서로서로 적으로 만들어 싸우는 세태에서도 서로에게 다가가 자리를 내어주어 더불어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부조리에 과감하게 저항했다.

 

철학 자체가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우리 철학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격동의 20세기를 거쳐 지금 여기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된 철학에 대한 연구와 계승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철학 공부가 대학 강단에서 주로 이뤄지다 보니 일반인들과 분리된 전문가들의 철학이 된 지 오래다. 철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세계관)이라면 우리 안에 축적되어온 삶의 철학을 정립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래서 대학 울타리에서 이뤄지는 철학 공부 대신 삶 속에서의 철학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학노동자의 말에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대학의 철학은 민중의 옆에 있지 않고 권력자의 옆에 있어왔다. 철학자가 꾸는 꿈은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행복이 아니라 너에게 나를 내어주는 행복이자 우리가 되는 행복이다. 그런 행복이 더 참다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 철학은 더욱더 치열하게 민중에게 달려가 민중과 더불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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