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 관련 책을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중국 현대사 관련 책을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중국 현대사 관련 책들을 봤다. 언론인 출신 전 미디어 오늘 현이섭 대표가 쓴 『중국지』 상·하권과 중국 연구가인 프랭크 디쾨터가 쓴 『인민』 3부작이다.

 

이들 책은 페이지가 방대했지만, 저자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섭렵해 중국 공산당 설립 이후 80년대 개혁 개방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내 권력 변천을 흥미진진하게 풀어써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중국지』 상권은 용쟁호투 편으로 1910년대 혁명전야에서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전까지, 하권은 대란대치 편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서부터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 毛澤東의 사망에 이어 1981년 鄧小平의 주석 취임까지를 연대순으로 다뤘다.


상권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수공권으로 국민당 장제스(蔣介石)를 제치고 중국을 평정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에 기여한 여러 인물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인민군으로 참여하면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정, 김신, 정율성 등 조선 인물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혈투에 대해 장제스는 질 수 없는 전쟁에 졌고 마오쩌둥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겼다고 단언한다.


장제스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을 판독하지 못해 민심을 얻지 못해 실패한 반면 마오쩌둥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갈구하며 민심을 얻어 인민공화국 수립에 성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권에서는 건국 이후 균열하는 공산주의자 간 노선상의 이념 갈등과 권력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다툼을 상세히 기술하고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추진 과정에 있어 마오쩌둥의 실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마오쩌둥은 정부 수립 이후 참모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의 의리를 내세우면서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어 미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을 거둠으로써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명분 아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중국 인민공화국의 대부에서 폭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자는 “절대 권력은 절대 패망한다는 역사적 교훈은 철권 통치자에게 우이독경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특히 문화대혁명은 인간성 상실의 야만의 시대로 점철했다”고 혹평한다.


유럽계 중국 연구가인 프랭크 디쾨터가 쓴 『인민』 3부작 중에서 1권은 해방의 비극(1945~1957년), 2권은 마오의 대기근(1958~1962년), 3권은 문화대혁명(1962~1976년)이라는 제목으로 내걸고 중국 인민들의 관점에서 중국인민공화국의 흑역사를 다뤘다.


저자는 비밀보호 기간이 지난 중국 정부와 공산당 자료들을 세세하게 들춰내고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당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


1권에서는 중국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 주석이 반대 세력을 제압하고 집권기반을 다져나가는 과정을 기술했다.


2권에서는 대약진운동 기간 중 15년 만에 영국을 따라잡는다는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계획을 세워 집행하는 과정에서 강제노역, 굶주림, 폭력으로 인해 무려 4,500만 명의 인민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상술했다.


소련을 제치고 사회주의 진영의 중심이 되겠다는 마오쩌둥의 야심이 중국 인민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는 스탈린 사후 자본주의 경제로 돌아가려는 후르시초프에 반대하여 농업집산화, 지도자 우상숭배, 사유재산제 폐지, 인민 통제, 막대한 국방비 지출 등 스탈린 노선을 지속적으로 답습하는 퇴보 행위를 보였다.

 

마오 주석의 이러한 퇴행적인 행위에 군부 원로인 펑더화이(彭德懷)가 반기를 들었지만 류사치오(劉少奇)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이끄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마오의 위세에 눌러 그의 반동적인 정책을 강화하는 데 오히려 일조했다.


3권에서는 마오가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뒤엎고 이에 반대하던 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문화대혁명의 불을 댕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오 주석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 넘어가기 위해서는 문화대혁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자신의 권위에 반하면 프롤레타리아 정권에 위협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폭정을 자행했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에 20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상실, 문화와 정신적 가치 상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피해와 부작용을 초래했다.

 

공산당은 신민주주의를 내걸고 모든 세력을 포용하겠다고 했으나 문화대혁명 기간에 인민의 기본적인 자유를 축소하고 인권을 유린했으며 인민군은 중화민국 시절의 군벌이나 외국 열강에 의해서 자행된 그 어떤 살인 사건보다 더 폭력적으로 인민을 탄압했다.

 

문화대혁명은 오히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의 잔재를 파괴해 당 본연의 이념은 사라졌고 정통성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저자는 마오쩌둥 사후 권부 정상에 오른 덩샤오핑(鄧小平)에 대해서도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처음에는 인민들이 스스로가 시장경제의 장점을 되살려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억제하고 인민공사를 강화하려는 등 반동적인 정책을 펼치려고 했다.

 

결국에는 공산당을 공고히 하고 철권통지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이용하고 인민들로 하여금 마오쩌둥 사상이 강요해온 이념이라는 잣대를 벗어나게 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는 것이다.

 

덩사오핑은 마오쩌둥에 대해 功 7 過 3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중국내에서도 그러한 평가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최근 시진핑 주석을 마오쩌둥 이상으로 떠받치려는 움직임은 이해할 수 없다.

 

마오쩌둥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마오쩌둥 시대의 과오를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권력 분산을, 경제적으로 개방화와 자본주의 체제 도입을 추진해왔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주석 임기를 늘리고 중국 안팎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마오쩌둥 사후 계속 추진해온 개방 정책과 민주화 조치를 뒤엎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인의 집권과 권력은 유한하지만 나라의 흥망은 계속 반복된다는 점에서 현 중국 지도자의 선택이 향후 중국의 앞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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