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공부법』(박희병)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선인들의 공부법』(박희병)

백재선 / 전임기자

나이가 들어 책을 읽다 보니 선인들은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꾸 생겨난다. 


젊은 시절 대부분 입시나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에 매달리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책을 보게 되니 이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박희병 서울대 교수가 엮은 『선인들의 공부법』은 나처럼 중장년층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태도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준다.

 

박희병 교수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성장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절실히 물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공부법에 대한 책을 발간하게 됐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저자는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서나 타인 위에 군림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막막한 벌판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절실히 고민한 끝에 서양식 근대학문론이나 아니라 동아시아 학문론을 바탕으로 공부에 임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동아시아 학문론은 공부하는 주체가 몸으로 깨닫는 동시에 마음으로 깨닫는 체득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학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일반을 가리킨다.

 

즉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공부의 과정이며, 삶과 공부는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공부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해나가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며, 인간과 우주의 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사람들 가운데 공부하는 데 훌륭한 성취를 보여 준 13분 선현들의 글을 발췌해서 책으로 엮었다.

 

중국의 학자로는 공자, 정자, 주자, 왕양명, 우리나라의 학자들로는 이황, 서경덕, 조식, 이이, 이익,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의 저서를 포함시켰다.

 

저자는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실사구시 공부법과 학문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비중 있게 소개함으로써 학문이 단순히 선비들의 수양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 나온 선현들의 공부 방법 중 인상에 남는 대목들을 소개해본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에서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했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라고 학문하는 목적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공자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 송나라 程子는 “자신을 위하여 공부한다는 것은 도를 자기 몸에 얻고자 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남을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으며, 남을 위하여 공부한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을 받고자 함이며, 이는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풀어썼다.

 

퇴계 이황은 “자기를 위한 학문이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도리이고,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 덕행이라 여겨 비근한 것부터 공부하여 마음으로 깨닫고 몸소 실천하는 학문이다. 남을 위한 학문이란 마음으로 깨닫고 몸소 실천하는 데 힘쓰지 않고 거짓을 꾸미고 겉치레를 찾아 명성과 칭찬을 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朱子는 학문을 등산에 비유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하나 낮은 곳으로부터 오르지 않으면 결국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들 있다”라면서 단계적인 학문 수행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왕양명은 “학문은 실천의 시작이요. 실천은 삶의 완성이다. 앎과 실천은 둘로 나눌 수 없다”라면서 학문이 실천적인 삶과 연결되었다고 봤다

 

서경덕은 “나의 학문은 모두 스스로 고심하고 온 힘을 다해 얻게 될 것이다”라면서 공부함에 있어 전력투구를 중시했다.

 

율곡 이이는 학문하는데 뜻을 세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뜻을 세움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고서도 행여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늘 물러서지 말 것을 다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뜻이 진실하고 독실하지 못하여 그럭저럭 시간만 보낸다면 나이를 먹어 세상을 마칠 때까지 무슨 성취가 있겠느냐고 자문해야 한다.”

 

홍대용은 책을 읽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을 읽을 때 결코 의문만 일으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마음을 평온하게 갖고 뜻을 오롯이 하여 글을 읽어가도록 한다. 그리하여 의문이 생기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의문이 생기거든 되풀이하여 궁구하도록 해야 한다.”

 

박지원도 “새벽닭이 울면 잠자리 일어나 눈을 감고 앉아 어제 읽은 글을 생각하며 가만히 그 이치를 다시 궁구해본다”라면서 책을 읽을 때 엄숙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다산 정약용은 실학의 대가로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책을 읽을 때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내용이 있으면 발췌하고 그렇지 않은 내용에는 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한다면 하루에 천백번을 읽더라도 읽지 않은 것과 매한가지다. 무릇 책을 읽을 때는 한 글자로 그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자세하게 연구하여 그 글자의 어원을 알아야 하며, 그런 다음 그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이 책 저 책에서 뽑은 작업을 날마다 해나가야 한다. “

 

다산은 책을 읽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더욱 따끔하게 충고했다.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번 새롭게 하여야 한다. 나는 젊은 시절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반드시 그해에 공부해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하였다. 무슨 책을 읽고 무슨 글을 발췌하겠다는 계획을 미리 정한 다음에 실행했다.”

 

최한기는 虛張聲勢의 과시를 위한 책 읽기에 대해 훈계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박학이란 훈고를 자랑하고 글귀나 뽑아내며, 일을 논할 때는 반드시 옛 문헌을 많이 끌어다 인용하고 저술을 할 때는 반드시 어떤 사실의 출처를 따져 논평하는 것이다. 이처럼 박식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인데도 우리나라의 풍속에서는 이를 숭상한다.”

 

선인들의 공부법은 오늘 시점에서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개인 스스로가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책 읽기와 공부에 매진하려 한다면 선현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요즈음 들어 동서양 고전을 읽을수록 선인들의 학문하는 자세와 인생철학에 대해 많이 접하게 되고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통찰과 지혜를 얻는데 있다고 본다.

 

신영복 교수도 『담론 』책에서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라고 밝히고 “고전 공부의 목적은 오래된 인식 틀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보통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단순히 정보와 지식 습득을 위해 공부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을 잘 소화해서 자신의 콘텐츠로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공부하는 이유와 방향에 대해 확실히 정립하여 거기에 맞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세파에 휩쓸려 개인의 삶이 각박해지고 존재가 가벼워져 가는 상황에서 자신을 찾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려 한다면 선현들의 공부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해서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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