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실번 S.슈위버』를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실번 S.슈위버』를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에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관련 영화를 봤다.

 

<아인슈타인과 원자 폭탄>이라는 영화는 아인슈타인이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자 지인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망명해 체류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는 영국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독일 난민 학자들을 위한 공개 연설을 계기로 나치를 비판하고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는 여러 국가를 오가며 대외 활동을 하다가 결국 미국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원자 폭탄을 개발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한테 원자 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독일이 앞서 패망했지만, 미국은 원자 폭탄 제조에 성공하여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그 이후 아인슈타인은 원자 폭탄 제조를 권유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핵무기의 평화적 사용을 주창한다.

 

<오펜하이머>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 가서 실험 물리학을 전공하지만, 흥미를 잃고 독일 괴팅겐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이론물리학 공부를 열심히 한끝에 박사학위까지 받는다.


미국으로 돌아와 버클리 대학에서 이론물리학 강좌를 열면서 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원자 폭탄 개발 책임을 맡은 그로브스 장군한테 발탁되어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을 맡게 된다. 그는 로스앨러모스에서 핵 관련 연구를 총괄하면서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원자 폭탄이 일본에 투하되면서 많은 살상자가 발생하자 오펜하이머는 정부위원회에서 수소 폭탄 개발 중지와 함께 원자 폭탄의 평화적 사용과 통제를 위해 소련‧중국 등 적대국과도 관련 정보를 공유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치열해지고 미국 내에서 매카시 선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오펜하이머는 급기야 그레이 위원회에 소환되어 결국 정부의 보안 등급 지위를 박탈당하고 재판까지 받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케네디 대통령 집권 시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여 가까스로 명예를 회복한다.


영화에서 아인슈타인은 영화에서 영국 체류 당시 여자 경호원들에게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쉽게 설명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인물로 묘사된다. 오펜하이머는 젊었을 때 공산당원들과 교류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지만 청문회에서 소환되어 정부 위원들로부터 압박을 받아 불안정하고 어두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두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물리학자인 실번 S.슈위버가 저술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두 사람이 워낙 유명한 물리학자라 각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많이 있지만 슈위버의 책은 두 사람의 삶과 업적을 중심으로 그들의 천재성에 관한 깊은 탐구를 제공한다. 또한 그들이 학계에서 거둔 성취와 활발한 대외 활동이 20세기 과학과 사회,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히 조명한다.


두 사람은 모두 독일계 유대인이지만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 학위를 받은 반면 오펜하이머는 독일에서 미국에 이민해서 성공을 거둔 아버지 때문에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유럽까지 유학을 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우주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물리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오펜하이머는 양자물리학을 응용하여 핵폭탄을 실제 개발하여 일본의 항복을 끌어낸다.


저자는 두 사람이 물리학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개인의 천재성보다는 이들을 위대하게 만든 배경과 환경, 그리고 이들을 도왔던 개인과 사회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대단했던 두 과학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다른 연구자나 친구들과 교감했고, 대단한 사람이 된 후에 자신을 어떻게 가꾸었으며, 자신들의 위대함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천재라는 수식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러는 데 있다”라고 밝힌다.


두 사람은 물리학 분야에서 거둔 혁혁한 성취를 기반으로 삼아 활발한 대외 활동에 나서 학계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탈출하여 영국에서 잠시 은둔 생활을 했지만, 강연과 기고 활동을 통해 반나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특히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루스벨트 대통령한테 원자 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두 차례나 보내 미국의 원자 폭탄 개발을 유도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 폭탄의 끔찍한 위험을 알고서야 세계 정부 구성을 통해 통제하자는 평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는 군사력을 갖춘 세계 정부를 구성해야만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한편 국제사법기관을 세워 회원국 간의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러셀과 함께 대기와 해양, 우주 공간에서 핵실험하는 것을 반대하는 지구적 캠페인을 벌여 1963년 핵실험금지조약 체결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사회운동의 영역에서도 항상 열정적이며 사려 깊은 지도자였으며 자신의 분명한 원칙을 갖고 매사를 신중하게 처신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젊은 시절부터 인도철학에 심취하고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하는 자유분방했지만 양자물리학을 응용하는 원자 폭탄 개발 실무 책임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으로 미국과 영국의 학자들을 총괄 지휘하고 군 당국자들과 원활히 소통했다. 오펜하이머의 뛰어난 지도력에 힘입어 미국은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 개발 이후 핵무기의 가공할 만한 위험성을 깨닫고서 정부 위원회에 의견을 제출하나 채택되지 못했다.

 

오펜하이머는 정치가들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국제적으로 핵에너지를 안전하게 활용하고 핵무기 이용을 통제하는 애치슨-릴리엔솔 계획안을 만들어 세계 원자력 기구(IAEA)가 출범하는 데 초석을 닦았다.


오펜하이머는 정부 위원회에서 지위를 잃었지만, 핵 원료의 평화로운 사용을 위해 강연을 하거나 언론에 기고하는 대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두 사람의 이러한 대외 활동은 과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망각하기 쉬운 윤리 문제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새로 얻은 지식과 힘을 책임 있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지식인이었고 자신들의 명성에 걸맞은 용기 있는 양심의 소유자로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나치 파시즘에 대항했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인종 차별과 매카시즘에 맞섰다. 그는 말년까지 세계 평화 운동과 반핵 운동에 어느 과학자 보다 앞장섰다.


오펜하이머도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는 무분별한 핵무기 개발에 제동을 걸고 인류 전체를 위한 평화적 사용을 권고하는 대외 노력을 지속해서 펼쳤다.


두 사람의 이러한 활동은 그들이 그냥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나름대로 철학을 갖춘 학자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수긍이 간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스피노자, 흄, 칸트와 쇼펜하우어 철학을 공부하면서 물리학 분야에서 자신의 연구를 철학적인 문제들과 통합을 이루고자 애썼다. 오펜하이머는 힌두교 철학을 공부하는 한편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다.


두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폭넓은 분야에 걸쳐 전체로서의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이에 과학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따를 수 있는 내부 지침을 세워 준수하고자 했다.


영화와 책을 읽고 나니 세계적으로 핵무기 개발과 사용을 놓고 호언을 부리는 정치가들의 만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정치가들에게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안녕은 정녕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과 기술의 사용 결정권을 정치가나 군인들에게 그냥 맡기지 말고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하고 평화적 사용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파시즘이 드세지고 민족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윤리 의식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의 비윤리적이고 반평화적인 행위에 대항하기에 우리 스스로 너무 역부족이라는 상황에 처해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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