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3 코스(용수 - 저지)

백재선 기자의 여행길 이야기

제주 올레 13 코스(용수 - 저지)

백재선 / 전임기자

제주 올레 13코스는 용수 포구에서 시작한다.


어제처럼 보슬비가 내려 우의를 착용했다. 어제 느꼈던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용수 포구에서 차귀도를 다시 찾았다. 비 내리는 아침 바다에 떠 있는 차귀도는 여전히 적막감에 쌓인 채 신비롭기만 했다.

 

 

 

 

 

올레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시작점 인근에 있는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에 들렀다. 기념관에 들어가 보니 김대건 신부 일행의 제주 표착지와 라파엘호에 대한 그동안의 조사 연구 결과를 상세히 알 수 있었다.


1845년 8월 상해에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와 그 일행을 실은 라파엘 호는 조선으로 항해하는 중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차귀도에 기착하게 되었다. 모진 풍파 속에서 차귀도에 기착하면서 한라산을 보고 안도했을 청년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나 자신도 기쁘기만 했다. 

 

 

 

 

기념관에서 비치된 김대건 신부 청동 흉상은 내가 이전에 봤던 어느 동상이나 조각상보다 패기 있는 청년 모습을 하고 있어 인상이었다.

 

 

 

 

 

기념관 외관은 라파엘호 모습을 띠고 있으며, 기념관 앞 광장 한쪽에는 복원된 라파엘호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옆 건물인 기념 성당에서 잠시 묵상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올레길에 나섰다.

 

 

 

 

 

올레길은 기념관 뒤로 이어지면서 민가로 들어선다. 돌 담벼락에 노랗고 보라색 야생화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들판 사이사이 돌담 밭에 무·파·양배추 등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볼 수 있었다.

 

 

 

 

 

올레길 도중에 좁은 문 돌 간판과 「길에서 묻는다」라고 새겨진 조그마한 순례자의 교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입구로 막 들어섰는데 안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췄다.

 

 

 

 

 

다시 돌담 사이에 놓인 샛길을 걸으니 제주도 전형의 석조 주택과 흙으로 쌓은 높은 굴뚝 집이 보였다. 교회 건물과 전통 석조 주택은 차를 타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걸으면서 주변을 차근차근 둘러봐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올레길은 용수 저수지로 향했다. 둑길에 올라서니 어제 12코스에서 봤던 연못과 달리 제법 큰 저수지다. 저수지에는 새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고 한쪽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수지 둑길을 벗어나 올레길은 민가와 농로 사이로 계속 이어진다. 올레길에는 민가가 듬성듬성 있어 사람은 별로 볼 수 없는데 이곳에는 하우스 귤 농장보다 노지 귤밭이 많아 보였다. 귤나무에는 조그마한 노란 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올레길은 계속 내륙으로 향하면서 작은 숲길을 만난다. 평지에서도 이런 숲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제주도만이 가진 지형적 특성이 아닐까. 육지 평야 지대에는 개발로 인해 숲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제주도는 그나마 덜 개발되어 평지에 숲을 간직한 곳이 많다.

 

 

 

 

 

길가에 소나무들이 늘어서 도보객들을 반겨주고 있다. 고목 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고목 숲길은 이름 그대로 수령이 오래된 큰 고목으로 둘러싸인 숲길이다.

 

 

 

 

 

이전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았지만, 제주올레가 길을 새롭게 내면서 고목 숲길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큰 나무보다 작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었고 길바닥은 특유의 곶자왈 지형처럼 검은 현무암이 깔려 있다.

 

 

 

 

 

일순간 다른 생각을 하다가 올레 안내 리본을 놓쳤다. 새로운 길인가 싶더니 이미 걸었던 길이었다. 작은 숲이지만 지형이 비슷해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올레 리본을 찾아 다시 걸으니 고사리 숲길이 나왔다. 고사리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라 하여 고사리 숲길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숲길로 들어가니 길 양쪽으로 크고 작은 고사리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일전에 올레길 코스 숲에서 같이 걷던 제주도 토박이 아저씨가 고사리를 따주겠다고 했으나 숲속에서 고사리가 전혀 보이지 않아 민망해하던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고사리를 보니 코스에서 먹었던 고사리나물과 제주시 우진식당 고사리 해장국 맛을 잊을 수 없다. 간장과 기름에 볶은 두툼한 고사리나물은 감칠맛이 났고 갈아 만든 고사리 해장국은 입에 슬슬 녹았던 기억이 난다.


고사리 숲길이 끝나니 「웃드르 권역」이라는 안내에 「낙천리아홉굿의자 마을」에 이르는 이정표가 나온다. 올레길은 낙천리로 가는 도로가 아니라 들판 길을 따라 우회한다.

 

   

 

 

 

한참을 걸으니 올레길 중간점인 낙천리 아홉굿의자마을에 이르렀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마을 이름이 궁금해 마을 소개 안내판을 상세히 봤다.


「설문대할망도 쉬어가는 낙천리 아홉굿(Nine Good) 의자마을」이라는 마을 소개 문구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홉굿은 마을에 아득한 옛날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된 9개 빌레 웅덩이에 명당수(저갈물)가 고인 것을 뜻한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오래라 도로 주변에서 식당을 찾아봤지만, 거리에 사람도 보이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중간 스탬프 간세 인근 쉼터도 굳게 문이 닫혀 있어 간식도 살 수 없었다. 큰 도로를 거닐 때 편의점에서 들려 허기를 달랠 수 있었는데 한적한 마을에서 편의점을 찾기는 더욱 힘들 것 같아 먹는 것을 포기했다.

 

 

 

 

 

배고픔을 참고 올레길에 다시 나섰다. 타원형의 위로 치솟은 전망대가 나왔으나 허기져서 올라갈 수 없었다. 전망대를 옆으로 두고 올레길은 잣길로 연결된다. 잣길은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돌무더기 길로 옛날에는 낙천리와 다른 마을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잣길 바닥은 설명 그대로 온통 돌투성이로 마치 해안가 검은 현무암 돌무더기 길을 밟는 느낌 그대로였다. 길의 옛 모습을 체험해 보라고 잣길을 복원시켜 13코스에 편입시킨 마을 사람들의 가상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배고픈 도보객에게는 험한 길에서 빨리 벗어나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만 앞섰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끝나자 흥법사라는 절이 나왔다. 절이 민가 사이에 있고 주택 건물이어서 현판이 없으면 절인 지 민가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을 끝에는 야자수가 곳곳에 심어진 멋진 건물이 나왔다. 이렇다 할 간판이 없어 타운 하우스인지 리조트 건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올레길은 동림원에 이르고 한경면의 4개 마을(조수, 낙천, 저지, 청주)의 설촌지인 「용선달리」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1610년경 전주 이씨 이동빈 일가가 용선달리에 입주하면서 마을이 시작되었고 당시 주민들은 한라산에서 땅속 물줄기를 따라 흘러나오는 구멍목이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구멍목이를 가운데 두고 6개의 물통을 두고 물통 4개는 식수로 나머지 2개는 목욕물로 이용했으나 현재는 4개의 물통만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제주는 물이 땅 아래로 쉽게 스며드는 지형이라 옛날부터 사람들이 용천수가 솟아 나온 지역에 우물과 연못을 만들어 식수나 농업용수로 활용해왔다. 해안지역에는 용천수가 흐르는 곳이 많지만, 내륙지에는 그렇지 않아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물 보관에 더욱 신경을 기울였다.


올레길은 농로 사이로 이어지다가 뒷동산 아리랑길로 접어든다. 아마 저지 마을 뒷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왜 아리랑길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언덕에 오르자 여기저기 묘지가 보였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뒷산의 공동묘지다.

 

 

 

 

 

올레길은 저지 오름 입구에 이르렀다. 저지 오름길에 들어서도 묘지가 계속 보였다. 묘들이 보이지 않으면서 오르막길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가파른 길을 오르자 울창한 숲속에 들어섰다. 큰 나무는 물론 난대림 작은 나무들이 들어서 우거진 숲을 이뤘다.

 

 

 

 

 

저지 오름은 해발고도 239m로 비고 100m로 아주 높지 않으면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올레길에서 오름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현지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오름이다.


마침내 오름 정상에 이르렀으나 전망대는 보수 중이라 오를 수 없었다. 정상 언저리 주변에는 나무가 빽빽이 서 있어 화산체 모습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분화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르지 못해 아쉬웠다.

 

 

 

 

 

저지 오름은 마그마가 폭발하면서 분출된 다량의 분석과 용암, 화산 쇄설물 등이 쌓여 만들어진 전형적인 원뿔형 분석구 오름으로 송이라고 불리는 분석(용암 덩어리)은 흑색을 띠거나 적색을 띠고 있다.

 

 

 

 

 

저지 오름은 원래 초가집을 덮을 때 사용했던 새(띠)를 주로 생산하던 곳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생명의 숲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저지 오름에서 내려오니 400년 수령의 팽나무 보호수가 도보객을 반겨주었다. 제주 올레 13코스는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끝난다.

 

 

 

 

 

올레길 13코스는 용수 포구 바닷가에서 출발했지만, 내륙으로 향하면서 중산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걷는 길 내내 크고 작은 숲속을 만나 도보객에게 걷는 맛을 더해주었다.


사람들이 별로 걷지 않는 숲과 벌판을 걸으면서 오롯이 고독에 잠기며 걷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코스 마지막 저지 오름 올레길은 정상까지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정상 주변 억새가 나부끼는 제주의 다른 오름들과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2023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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